[High End Audio Complete Guide] À½¾Ç¼º

음악성


최종적으로 우리는 시스템 특성 중 가장 중요한 측면 - 음악성(musicality) - 에 도달하였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특성들과 달리 음악성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어떤 구체적인 특성이 아니라 시스템이 전달해주는 음악적인 만족감입니다. 여러분의 음악성에 대한 감각은 표현의 특정 부분에만 집중하면 손실되고 맙니다. 예를 들면 비평적으로 들을 때처럼 말입니다. 음악성은 재생되는 음악에 대해서 우리가 반응하는 심리적인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태에 대해서는 몰입(involvement)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이엔드 오디오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소리를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성입니다.

다음의 에세이는 분석적인 감상과 음악성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스테레오파일 1992년 11월호에 게재되었으며, 승인을 얻어 여기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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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적 감상과 음악 감상의 사이에서 - 로버트 할리    


오디오 애호가들은 음악 재생의 경험을 개선할 수 있� �방법을 지속적으로 추구한다. 프리앰프를 업그레이드하고, 디지털 프로세서를 비교하며, 턴테이블을 만져본다. 또 스피커 케이블을 빌려서 들어보고, 딜러를 방문하며, 물론 잡지도 읽는다. 이 모든 것은 음악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인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즉 물리적인 수단에 의해서 음악을 더 즐기기 위한 시도라는 점이다. 그러나 어떠한 수단 - 기기를 업그레이드하고 액세서리를 써보고 또 세계 제일의 하이엔드 오디오 상점에 백지 수표를 들고 가는 것 - 보다도 이런 목표를 더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돈도 들지 않는다.

지금 나는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우리의 청각에 개재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어떤 일이 생기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잡념을 지워버리고 음악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게 하는 능력, 또는 그것의 결핍은 우리가 음악을 얼마나 즐길 수 있는가에 큰 영향을 준다.  여러분은 같은 시스템이나 레코딩에서 음악에 몰입하는 범위에 큰 차이가 있어서 방황한 적이 있는가? 유일한 변수는 우리의 마음 상태인 것이다.

오디오 애� 0〉湧�음질에 대해 염려하기 때문에, 종종 음악의 빠져드는데 잡! 념이 들� 載"�쉽다. 이러한 잡념들은 주로 음의 성격적인 측면과 관계되어 있다. 음장에 깊이가 없는가? 또 저역이 충분히 뻗어주는가? 고역에 입자가 있는가? 자신의 시스템을 잡지에 나온 시스템들과 어떻게 비교하는가?  

불행하게도 이러한 사고 방식은 하이엔드 오디오 잡지들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 이러한 잡지에는 음악적이고 감성적인 만족에 대한 제품의 기여가 아니라 제품의 소리에 대한 설명 - 그 특정한 성능이 기여하는 - 이 인쇄될 뿐이다. 음악적 만족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제품에서는 더 쉽게 이루어지는 감상자와 음악과의 교류를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잡지에서 우리는, 오디오 애호가가 된다는 것이 음악의 의미에 더 가깝게 연결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분석과 비평적인 표현에 관련된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어떤 특성에 대한 설명만을 듣게 되는 것이다.  

오디오 평론가(훨씬 더 진지한 감상자)가 되고 나서 몇 달 후에, 나는 모종의 위기를 경험했다. 예전의 방식대로는 더 이상 음악을 즐길 수 없음을 발견했다. 음악 감상은 오디오를 직업으로 선택하게 해준 깊은 감! 동의 경험보다는 따분하고 또 직업적인 의무일 뿐이었다. 나의 딜레마는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소리의 품질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음악은 소리에 대해 부차적인 것이 되어갔다. 음악은 나에게 정감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부분의 합이며 분해하고 연구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 달의 리뷰를 제출하고 난 다음에는 바로 파티가 시작되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비평을 멈추고 다시 음악 애호가가 되었다. 제품의 성능을 알려줄 레코드가 아니라 내 자신이 좋아하는 레코드를 돌렸다. 인공적인 조합으로서의 소리가 아니라 전체로서의 음악이 내게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과 같았다. 다음 달 리뷰를 위해 할 수 없이 제품을 다시 세팅할 때까지, 몇 일 동안 잃어버렸던 시간을 보충했다.

여기에 나는 특별히 건축된 감상실과 전세계 최고의 오디오 재생 기기로 가득 찬 선반, 그리고 상당한 시간을 감상으로 지내는 직업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시간에는 음악을 즐기지 않는다. 값싼 카 스테레오가 더 큰 음악적 만족을 주었다. 무언가! 몹시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내게 음악을 ! 듣는다는 것 - 다른 것들 사이에서 - 이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감상시간의 대부분동안 소리에 대해서는 잊기로 결정했으며, 어떤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좋은지 음악이 내게 이야기하도록 했다. 비평적인 감상과 분석적인 증명은 음악적인 즐거움에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제품의 특성을 전달해주는 진단용 레코딩보다는 내 자신이 좋아했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소리를 듣고 분해해야 되고, 또 지속적으로 가치 판단을 해야 한다는 충동이 점차적으로 사라졌다. 그 결과 나는 내 생애에 있어 다른 어느 때보다도 음악을 더 즐기게 되었다. 좋은 소리는 더 좋은 음악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소리에 대해 잊어버릴 때 그렇게 된다. 게다가 이러한 전환으로 감상과 리뷰 기술이 더 향상되었다. 이제는 어떤 제품이 오래 들었을 때 음악적으로 더욱 만족스러울지 더 잘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디오의 특징을 잘 드러내어주는 녹음을 사용하여 분석적으로 감상하는 일은 리뷰 과정 중에 여전히 필수적인 부분으로 남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평가 중인 제품의 특정한 소리 특성을 전달하는 일도 필수적인 작업이다. 제품을 ! 구입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제품의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그리고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진단 분석은 리뷰의 아주 일부분만 지니고 있을 뿐이며, 더 이상 지배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더 나아가 나는 분석적인 추론에서 얻어진 정보들은 낮은 지식의 형태이며, 제품의 특성에 대한 느낌 - 제품이 음악을 전달해주는 능력 - 이 더 높은 지식의 형태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분해하려는 충동과 이성이 서구적 사고방식에 어떻게 배어 있는가에 대해 더 깊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전통적인 이성은 전체를 부분의 합으로 보았다. 분해하고, 분류하며, 또 계급 구조를 분류하려는 욕구가 이성의 근간이다. 서구적인 교육에서는 어떤 대상을 단지 그 구성요소의 조합으로 보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재생되는 음악이 왜 다른 것일까? 결과적으로 우리는 재생되는 음악에서 고역, 저역, 중역, 음장, 디테일, 그리고 에어(air)를 듣는다. 그러나 여러분은 얼마나 자주 라이브 콘서트에서도 하이파이 시스템을 들을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소리를 분석하는가? 여� �隙�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라이브 뮤직에서 토널 밸런스나 ! 깊이, 입 자가 없다든지, 아니면 이외에 우리가 재생 음악에 부여하는 다른 특성들을 경험한 적이 없다.

꽃을 알기 위한 두 가지 접근 방법을 생각해보자. 전통적인 이성에서는 꽃을 뽑아서 분해하고, 구성 요소를 분류하고, 또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여 기록한다. 꽃을 감상하는 또 다른 방법은 앉아서 그것을 살펴보고,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형상, 색깔, 향기, 질감에서의 미묘함을 발견하며 그 본질에 잠겨드는 것이다. 첫째 방법에서는 어떤 종류의 지식 -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 을 얻게 되지만, 그것이 전체 지식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첫 번째 방법에서는 대상 - 즉 꽃을 평가 과정 중에 파괴하게 된다. 분해가 끝난 후에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남겨진 것이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음악을 더 이상 즐길 수 없었던 이유이다. 분석적인 분해는 내가 알고자 한 것, 그 자체를 소모하게 된다. 지적인 사고를 억지로 개입시킴으로써 음악과 감상자의 조화는 깨지게 된다.

이성의 위대한 업적에 의해 일단 음악 재생이 가능하게 되었지만, 비이성적인 경험의 장점을 간과하게 하는 오만을 생겨나게 했다. 이성보다 가치 있는 것� �모두 내적인 것이며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음악적 즐거움을 방해하는 소리를 분석적으로 감상하는 것만은 아니다. 모든 지적인 활동은 체험을 약화시킨다. 여기서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하이파이 매거진에 의해서 발표된 어떤 기준에 대해 측정된 가치를 할당하고 다른 시스템에 대해 비교하거나 음악에서 산란하게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감상 체험의 질이다.

내 자신의 취미인 모터사이클 여행에서도 그와 유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1987년에 혼다 골드 윙 아스펜케이드(Honda Gold Wing Aspencade)를 구입했고, 또 상당한 거리를 달렸다. 다음 해, 그 모델은 6개의 실린더와 1520cc 엔진(내 것은 4개의 실린더와 1200cc 모터를 갖고 있다), 후진기어와 다른 많은 기능 및 개선으로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되었다. 모터사이클 매거진에서는 특히 내가 갖고 있는 구형 버전과 비교하여 새로운 윙을 격찬했다.

그러나 아내와 함께 미국 남서부를 여행할 때 새 모델에서는 얼마나 좋아졌을까 생각하지 않았던가? 새로운 모터사이클 모델의 등장 때문에 여행의 즐거움이 ! 줄어들지는 않았던가?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따금씩 과거(새! 모델을 기다렸었어야 했는데)와 미래(어떻게 하면 그것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외적이고 쓸모 없는 생각들 때문에 즐거움이 방해받기는 했다. .  

이것은 음악 재생 기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크렐 KSA-250을 예로 들면, KSA-200보다 훨씬 더 좋은 앰프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에 KSA-200을 사용하고 있으면, KSA-250이 나온 다음에는 음악 감상이 덜 즐겁게 될까? 정말 우스꽝스러운 가정이다. KSA-200은 KSA-250이 나온 후에도 성능이 달라지지 않았다. KSA-200은 제품을 구입했을 때에 음악적인 즐거움을 주었다. 왜 지금은 덜 즐거운 것인가? 그것은 순전히 마음의 상태이다.

시스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그것은 개선의 원동력이다. 그리고 더 좋은 시스템에서는 더 깊은 음악적 체험을 만들어 준다. 그러나 당신의 시스템이 친구의 시스템보다 떨어진다고 해서 또는 만일 당신이 최신의 제품을 갖고 있지 못하거나 또는 만일 소리가 매거진에 설명된 것과 동등하지 못하다고 해서 음악을 즐기지 말아야 할까?

이러한 것들은 실제 생활에 노출되는 인공적인 발명품이지 실제 그 자체는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체험이다. 즉각적이고 지금 바로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다른 사고 방식이나, 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은 모두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손상시킨다.

이렇게 생각하면(더 정확히는 생각하지 않으면), 음악적인 만족감은 더 이상 외적인 수단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렇다. 기술이 우리의 집에 선사한 음악은 물리적이고 외적인 것이지만, 아무리 기계가 좋더라도 순수하게 기계 자체를 통해서는 만족감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보다 기계를 단지 매개물로 봉사하도록 하고, 음악과 감상자가 특별히 교감하는 것이 음악에 더 다가가는 길이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 없이는 어떤 수준의 제품도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한다. 최고의 제품으로 채운 전용 공간에서도 음악의 즐거움이 한 때 사라졌던 일은 이러한 자명한 이치를 확인시켜 준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여러분의 시스템을 비평하고 업그레이드하라. 더 큰 음악적 즐거움에 도달하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좋아하는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올리고 조명이 어두워질 때는 케이블, 프리앰프, 트윅(tweak), 그리고 잡지는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 순간 유일하게 중요! 한 것은 음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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