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4월 2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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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을 이야기할 만한가?

누구나 죽는다. 굳은 믿음이 없는 한,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 전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두려워한다. 

자기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삶 저 편의 세계, 아니 죽음 저 편의 세계, 그런 세계가 과연 있기나 할까?

그래 피할 수 없는 삶의 멍에라고 하지 않던가. 이는 곧 삶과 죽음은 서로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을, 삶의 끝은 죽음이고, 산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말로는 애써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하여 자연의 이치대로 자신의 죽음을 자연스러운 현상이려니 하면서도, 정작 그 앞에서는 음울한 반항과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을 느끼는 까닭을 알아내야 하므로 죽음을 두고 이야기할 만하다.

그래야 우리의 삶도 진지해질 수 있다. 공자는 "아직 삶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 라! 고 했다. 나의 존재가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긍긍하기보다는 지금의 삶에 더욱 성실하라는 가르침이라 새길련다.

김국환은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라고 했다. 그래 죽음은 언제든 우연히 마주치면 받아들이면 그만인 것이다.

삶을 올바르게 알기 위해서도 죽음은 이야기할 만하다.


2. 죽음, 여전한 아픔 

'죽음을 이야기할만하다' 고 그 이유는 찾았다 해도 이를 생각할 때에는 여전히 격한 아픔이 밀려온다.

그 아픔은 '죽음 그 자체'라기 보다는 역시 존재의 사라짐, 그로 인한 근원적인 소외가 주는 고통일 것이다.
어찌 보면 그 아픔과 고통이 죽음에 관한 우리의 현실일 것이다.

그래 사람은 그 알 수 없는 세계를 '알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신화를 통해서, 문학작품과 그림과 음악을 통해서 숱하게 죽음을 이야기한다.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는 <신곡>이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죽음 후의 세계! 를 말해주고 있다. 가슴속으로만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에서 단테는! 무엇을 느꼈을까? 이 머나먼 여성은 이제 문학적 상상력이 아니고서는 살아날 길이 없었다. 비탄과 상심에 빠진 단테는 <신곡>에서 그녀를 만난다.

뭉크(Edvard Munch, 1863-1944)와 실레(Egon Schiele, 1890-1918) 또한 그림을 통해 죽음을 보여주었다.

뭉크의 그림을 보라(<죽음과 소녀>, 1893). 허물을 벗어내듯 벌거벗은 한 소녀가 두 팔로 사내의 목을 감고 있다. 죽음을 상징하는 사내 또한 두 팔로 소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다. 소녀의 가랑이 사이로 사내의 다리 한쪽이 나와 있다. 죽음과 소녀는 춤을 춘다.

실러의 그림을 보라(<죽음과 소녀>, 1915). 역시 죽음을 상징하는 사내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소녀는 불안정하게 매달려 있다. 소녀의 차림새에서 고단한 삶의 흔적이 엿보인다. 곧 하나가 될 듯한 사내와 소녀, 절실함이 느껴진다. 




3.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

누군가 뭉크의 작품에 음악을 채워 넣어야 한다면, 당연히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14! 번이 적절할 것이다고 했다.

많은 가곡을 남긴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 그를 대표하는 <보리수>, <들장미>, <마왕>, <겨울 나그네> 등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음악은 한 폭의 수채화다. 가슴 저미는 서정시다.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그의 삶은 쓸쓸한 겨울 나그네였고, 여느 음악가와는 달리 화려한 연주회나 환호하는 청중도 없이 자신만의 음악에 빠져 살다가 너무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은 보아주는 이 하나 없이 쓸쓸하게 피었다가 지는 들장미였다.


- Alban Berg Quartett (EMI CDC 7 47333 2)
- Takacs Quartet (Hyperion CDA 67585)

자신의 여러 가곡 중의 하나인 <죽음과 소녀>의 선율을 주제삼아 슈베르트는 현악사중주곡 14번(String Quartet No.14 in D minor, D 810>을 작곡한다.! 가장 빼어난 현악사중주곡이라 하겠다.

어둡고 짙은 죽음! 의 그림� 微�배어있다. 죽음을 상징하는 사내를 껴안고 있는 소녀를 그린 뭉크나 실러의 그림을 닮은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곡 <죽음과 소녀>. 소름끼치는 듯한 감정의 솔직함, 찌든 삶을 뒤덮고 있는 듯한 회색빛의 비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딜레탕트의 음악이야기는 20회로 마치렵니다.

학교 신문에는 23회까지 실었지만,

23회는 신년호에 실린 것으로, 소리에 대한 잡생각을 두리뭉실하게 쓴 것이고
22회는 사실 마지막 글인줄 알고 대학생에 초점을 두어 브람스 대학축전서곡을 이야기 했으며
21회는 하이든의 일곱말씀을 실었는데, 이는 이미 쓴 글을 욹어먹은 것이라

슈베르트의 현사 <죽음과 소녀>를 딜레탕트 음악이야기 마지막 글로 삼으려 합니다.







본 글은 원저자인 장규원 교수님의 허락하에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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