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LS 3/5A monitor

1994년 "하이파이 저널"에 실린 글이라고 합니다.
몇월호 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스피커의 성좌 중에서 근 20년 간에 걸쳐 찬연히 빛을 발하고 있던 별 하나가 근년에 자취를 감추었다. LS 3/5A의 각 메이커에 유닛을 공급해 오던 KEF사측의 사정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범람하고 있는 스피커 공해로 도태되었는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2년쯤 전부터 생산 중단이 되었다.
세계 어느 오디오숍에 가도 늘 한구석을 장식하고 있던, 비 그친 다음의 바람과 달 광풍제월(光風霽月) 같던 그 소리와 모습은 앞으로 좀체로 접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정식 본명은 BBC LS 3/5A monitor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첫부분과 끝부분만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운뎃부분의 LS 3/5A 라는 글자와 숫자의 간단치 않은 조합을 보면, 서양에서는 물건에도 세례명을 주는지 아니면 무슨 특명암호인지 또 3과 5 사이에 빗금은 왜 쳤는지 3/5B는 왜 없는지 모를 일일 투성이다.

어쨌든 이 심플한 디자인의 작은 스피커는 죽어서 비로소 그 이름을 길이 남길 것임에 틀림없지만, 세계의 수많은 오디오화일에게는 비보요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의 온갖 골리앗을 곯려 주던 깜찍하고 지혜로운 작은 거인 다윗이 이처럼 홀연히 종언(終焉)을 고하다니....

LS 3/5A와의 러브 어페어는 다 말하자면 길고도 가슴 아리는 얘기가 되지만, 처음 만난 것이 1983년이었는데, 몇 번의 별거를 겪다가 지난해 11월에 헤어졌으니 햇수로는 10년 정도 되었다.

곁눈질 잘 하고 변덕스러운 호구(虎口)로서는 실로 대견스러운 지조였다 하겠다. 매년 어김없이 등장하는 늘씬하고 눈부신 화려한 미스 유니버스들에게 한 순간씩 눈을 돌려 봤지만 그것은 이 작은 미인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하는 촉매에 불과했다.

10년 전 이맘 때 옥스포드 교외에서 실어온 낡은 진공관 앰프와 짝을 지워 밤늦게까지 울렸을 때의 그 열락(悅樂)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뿌듯하다.

로시니서곡을 방정맞을 정도로 하도 잘 따라가며 스피디하고 낭랑하게 잘 울려주었기 때문에 그 후에도 로시니를 들으면 그 때가 생각나서 애틋한 감회에 빠지곤 했다.

LS 3/5A는 1970년도 중반에 시판되기 시작했으므로 20년 가까운 수명을 누렸다. 변화 많은 오디오 세계에서 그것도 끝까지 쟁쟁한 현역으로 겨루었음을 감안하면 가위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하겠다.

AR 3a가 중간 크기의 박스형 스피커로서 일세를 풍미했다면 이 작은 LS 3/5A는 출신지는 다르지만 그 대를 잇는, 당시로서는 신세대의 또 하나의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생활향상과 더불어 오디오제품이 세계적으로 대중화되면서부터 폭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2,30년 사이에 수천 가지의 크고 작은 스피커가 나왔겠지만, 이 LS 3/5A야말로 모든 면을 감안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해도 과찬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런던의 자연과학사박물관에 가 보면 오스틴사에서 만든 딱정벌레 같은 작은 자동차를 반으로 싹둑 잘라서 내부구조가 훤히 들여다 보이게 해놓고 전시하고 있다.

독일의 폴크스바겐이라면 우리에게도 눈에 익지만 영국에서는 남녀노소 이 작은 오스틴을 무척 사랑하고 있다. 배기량 1000cc 정도로서 우리 나라의 티코보다도 크지 않지만 그 애교 있는 외모와 1갤론의 기름으로 무한정(?) 달려 주는 경제성과 견고한 구조 때문에 "인류가 만든 기적의 차"로서 전시되고 있다.

그 오스틴 차에 해당되는 것이 스피커로서는 바로 이 LS 3/5A가 아닌가 한다. 언젠가 이것도 멸종되기 전에 그 박물관에 전시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세계의 어느 경우를 보아도 스피커 한 짝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거국적인 팀웍을 경주(傾注)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고 본다. 어떤 명작 스피커도 한 회사내에서 한두 사람의 기술자에 의해서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시골 노인들의 낮잠용 목침만한 이 작은 제품은 BBC 당국과 다들리 하우드, 모리스 워튼, 랠프 밀스 등에 의하여 주도되었던 개발팀이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여 천신만고 끝에 창출해 낸 각고의 결정이다.

이 팀의 구성원이었던 사람들은 여기서 얻은 값진 연구 결과를 계승 전파시켜 영국 스피커 업계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이 팀 중의 하우드는 그 후 독립하여 자신의 이름에 부인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합쳐 하베스라는 스피커 회사를 차렸다. 이 사람들의 정수(精髓)를 이어받은 앨런 쇼가 HL 컴팩트, HL 5 등 일본에서 대호평을 받고 있는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만든 사람의 양식(良識)이나 제품의 성능면에서 LS 3/5A와 유사한 점이 많다. 상당한 내용상의 개선이 확신될 때만 신모델을 만든다. 단정한 외양에 합리적인 가격을 모토로 삼는 듯 일확천금형의 제품은 만들지 않는 회사이다.

이 BBC LS 3/5A 모니터 스피커는 그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원래는 상품용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었다. 영국은 큰 나라라고 할 수는 없는데도 BBC는 전국에 수백개의 방송국을 가지고 있다.

워낙 규모 있게 사는 사람들이라 일반주택도 우리보다 좁은 편이니 방송국 스페이스도 틀림없이 협소할 것이다. 그 좁은 방송실을 메운 잡다한 기재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악기 소리나 보컬이 제대로 재생되는지 그것도 전국적으로 균질의 것인지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하고 짧은 예산 범위 내에 들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악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했다.

BBC는 생방송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대담프로, 강담(講談)프로, 도큐멘터리, 현지 르포, 그리고 뉴스와 그 해설이 대부분이며 나머지가 음악 방송이다. 유익한 교양 프로로 거의 다 차 있어서 영국 사람들은 학교를 마쳤어도 앉으나 서나 들으면서 늘 공부가 되므로 모르는 사이에 유식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평생 방송만 들어도 박사가 될 듯했다.

자고로 여걸이 많아서 여왕이 흔하고 수상도 여장부가 사상 최장기 집권했던만큼 여자의 목소리가 드센 나라가 영국이다.

흔한 여자 목소리가 실제처럼 들리지 않으면 곤란을 받을 처지다. 사람의 목소리 가운데서 여성(女聲)의 사실감 있는 표출이라는 난제만 풀고 나면, 그 다음으로 많은 음악회 생중계의 현장감 문제는 저절로 풀리는 것으로 본 것이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음악성이 좋은 스피커 중의 한 쌍이 탄생한 것이다.

어려운 조건하에서 꾀를 잘 내는 영국식 슬기의 단면을 여기서도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모니터용 스피커인데 이처럼 작게 되어 버린 것은, 순전히 예산상이나 공간상의 문제만이라고는 할 수 없고, 시행착오의 과정 중 현재의 크기가 가장 좋은 결과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LS 3/5A는 어느 때 보아도 작으며, 볼수록 더 작아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처음 들을 때 좋고 들을수록 더 좋아진다. 10년쯤 들어 보면 그 진가를 완전히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 나라에서조차도 이 제품은 저가품의 부류에 든다. 크기로 품평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소리만은 보석처럼 빛나고 새벽의 산봉우리만큼 깨끗하며 기품있다. 그러면서 따스한 사람의 체온도 있다. 소형차 오스틴의 예와 마찬가지로 값이 싸다고 해서 내용마저 싸구려로 만들지는 않는다. 영국인의 양심과 집념을 보여 주는 표본이며, 그래서 유니온잭의 레이블을 자랑스럽게 붙일 수 있는 제품이다.

LS 3/5A는 등장 당시 모국에서는 별로 큰 인기를 얻지 못했으나 ,오히려 스케일이 큰 사람들인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대반향을 일으켜 한때 모든 스피커의 레퍼런스로 일컬어지기까지 했다. 일본에서의 인기도 꾸준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과거 근사해 보였던 전축에 대한 잠재의식 때문에 집치장으로서는 아무 효과가 없는 이 스피커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지 않다. 우리 집에 오디오 세트 있다고 해야겠는데 이 정도로는 도무지 버젓한 맛이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비쥬얼효과가 전혀 없는 탓이리라. 그러나 이 모델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그 후 세계적으로 소형 북셸프형의 홍수 시대가 도래했다. 너도나도 뒤질세라 거의 다 참여했다.

쿼드와 같이 정전형을 고수한 메이커만 제외될 뿐 린 프로악, 셀레스천, B&W, 타노이, 헤이브룩, KFE, AR, 야마하, 소니, 테크닉스 등 세계의 모든 메이커를 다 열거해야 할 정도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소형 스피커를 많이 생산했지만 심심풀이 정도였던 것을 이 LS 3/5A가 소형 북셸프형의 가능성에 불을 붙인 격이 되어 모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들 메이커의 제품은 같은 사이즈로 거의 반값에 시판되어 덩달아 팔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 옥석혼효(混淆)의 경향이야말로 LS 3/5A의 비극의 원인이 된다 하겠다. 크기에 비해 너무 비싸다는 것이 세평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은 한두 가지 면에서는 나을 수도 있겠으나, 음악성에 있어서는 그 어느 것도 근접조차 할 수 없는 유사품이며 에피고넨일 뿐이다. 그 차이는 한나절 정도의 A/B 테스트로는 판가름되지 않는 것이다.

보통 오디오를 갖출 때 예산안배라는 것을 하지만, 이 스피커에 한해서만 이런 통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스피커로서는 비운이다.

다시 말해 그 값이나 크기에 비해 너무나 그 질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유사한 가격대의 다른 연관 컴포넌트와는 질적 균형이 너무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 스피커를 쓰는 사람들은 대개 일체형(인티그레이티드)의 보급가 앰프에다 비슷한 가겨대의 CD기나 아날로그 플레이어를 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이 스피커는 다른 기기를 천하의 못난이로 만들어 버린다. 다른 유사품처럼 너그럽게 융화(?)할 줄을 모른다. 현존하는 제품 가운데 이것만큼 주변기기의 열악성을 무자비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스피킹해 주는 스피커는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이 스피커는 최고의 프론트엔드에 최량의 앰프를 요구한다. 가령 앰프 같으면 오디오 리서치 정도가 최소한이다. 토렌스의 '프레스티지' 플레이어의 진가도 여기서는 십분 감지될 수 있다.

여타 소형북셸프와는 달리, 음악의 본령을 표출해 준다. 이 스피커를 보노라면 고고한 처녀가 너무 눈이 높아 세상 남자들이 가소롭게 여겨진 나머지 끝내 배필을 찾지 못하고 늙어 가는 듯한 딱한 인생사가 연상된다.

일본에는 넓은 전시실에서 각종 고급기를 들려 주는 숍이 많다. 첼로와 마이크로 8000 II에 연결된 LS 3/5A는 전혀 꿀리는 데 없는 당당한 구성원이었다. 이 스피커는 진공관과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또 한 가지 이 스피커가 크게 보급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마케팅상의 이유도 있다. 선전을 해봤자 자사 기술로 만든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그 우수성의 선전에도 한계가 있을 것임은 쉽게 이해가 간다.

음악을 해부학적으로 갈라서 초고음, 고음, 중음, 저음, 초저음 등으로 분류할 때 이 스피커는 초저음 부근의 소리는 씻은 듯이 없다. 그런 면에서는 이 스피커만큼 열등한 제품도 드물 것이다. 또 고역의 상단에서 명주실 같은 매끄러움이 모자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드레인지에서의 소위 뮤지컬리티나 균형감(한마디로 말해 음악을 들을 때의 즐거움)은 십년을 들어도 아쉬운 점을 찾지 못할 만큼 훌륭하다. 또 이 스피커는 100% 플랫하다라고는 할 수 없고, 미드레인지에서 약간의 '붐'이 감지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점이야말로 개발팀이 소형의 약점을 살리기 위해 장고끝에 만들어 낸 절묘한 윤색(潤色) - 컬러레이션이라고 하기에는 아까워서 - 의 콤프로마이즈이며, 오히려 이 스피커의 매력의 주된 포인트가 아닌가 생각한다. 세상에 100% 완전한 스피커는 없지만 이 정도의 흠은 없는 편에 가깝다.

오디오에 있어 미드레인지란 단순히 물리적인 대역만은 아니고 대부분의 음악이 숨쉬며 살고 있는 홈 스위트 홈이다. 음식으로 치면 주식(主食)에 해당된다. 이에 대해 울트라 대역은 관광 호텔이며, 향신료나 기호 식품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관광지에서 연중 살 수는 없는 노릇이며, 향신료나 기호식품은 많이 먹으면 역겹다. 관광지에서의 식도락은 1년에 한두 번이면 족하다.

초저역의 재생음을 듣기 위해 천만금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더욱 아까운 것은 그렇게 비싸게 산 초저음을 귀중한 미드레인지와 맞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파이광과 오디오화일은 서로 좀 다르다고 하겠다.

그래서 스피커에 관한 한 고전음악을 듣기 위해 이 이상의 것에 투자한다는 것은 낭비에 가깝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그만큼 이 작은 것은 빠질 데가 없다. 특히, 이 스피커에서 울리는 성악은 원래의 개발 목적도 있고 해서 가위 독보적이다. 오디오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동료 한 사람이 어느 휴일날 우리 집에 들러서 이 LS 3/5A와 쿼드 63을 비교해서 듣고 있던 나에게 말했다.

"아이구, 이런 작은 스피커를 가지고 무슨 음악을 듣습니까? ... 아니, 그게 아닌데! 이 쪽 큰 놈보다 훨씬 또랑또랑하네. 거 참 맹랑하네..."

당시 듣고 있던 것은 칼라스의 프랑스 아리아집이었다. 문외한은 싱싱한(?) 귀를 가졌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나 싶었다.
값은 6,7배나 비싸면서 소리가 작은 놈만 못해서,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하고 이상히 여기던 참이.

그러나 이 스피커에도 한계는 있다. 많은 명작 스피커가 그러하듯이....
5평이 넘는 공간에서는 아무래도 양감이 좀 부족하고, 말러 이후의 음악이나 재즈에 있어서는 저역이 약간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재즈와 현대음악도 자주 듣게 되면서부터 나는 이 미드레인지와 동질의 저역을 연장시키기 위해 참 오랫동안 온갖 궁리를 다 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다 허사였다.

오뉴월에 서릿발 내리게 하는 청상과부 같은 이 작은 물체는 도무지 아량이 없어 모두 퇴짜를 놓는 것이다.

1989년 봄, 일본으로 떠나기 전부터 3년반 후 돌아올 때까지 근 5년 가까이의 세월을 궁합 맞는 서브우퍼 찾기에 허송했다. 한때 우리나라 애호가들에게 꽤 인기 있었던 미국제 MK라는 3D 타입의 스피커가 있는데, 그 서브우퍼의 크기, 외양 처리 대역이 이 LS 3/5A와도 조화가 잘 될 것 같아 시험해 봤으나 소용없었고, JBL의 구식 서브우퍼도 시도해 봤으나 더욱 터무늬없었다.

딸놈 대학입시 준비관계로 일본 부임 후 처음 9개월 동안 혼자 지내게 되었다. 좁지 않은 거실에서 저녁만 되면 오디오를 만지작거리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현지에서 세 번째의 LS 3/5A를 샀는데 로저스의 프로 모델이었다.

평생의 반려로 삼기 위해 자디스의 프리 80과 파워 30을 구입했다. 소타(턴테이블)를 두고 왔기 때문에 J-웨이브라는 재즈 FM을 많이 들었다. 하루 종일 생음악 녹화방송을 하는데다 방송국도 사택이 있는 아자부라는 동네에 같이 있어서 기가 막힌 아날로그 소스를 제공해 주었다. 돈이 많다 보니 세계 각국의 나이트클럽을 순회하며 생생한 현장연주를 녹화방송하는 모양이었다.

서브우퍼를 쓰지 않고 저역을 개선해 보려고 쿼드 63 프로를 끝내 또 샀으나 현대음악에나 재즈에나 크게 개선되는 점을 주지 못했다. 엔텍이라는 무척 비싼 서브우퍼를 빌려서 시청해 보려 했으나 취급 상점이 원거리에 있고 워낙 부피도 커서 결국 포기하고 당시 한창 떠들썩하던 야마하의 액티브형 최신 서브우퍼에 관심이 쏠렸다. 리모트콘트롤이 딸려 있는데다 저역의 캇오프도 마음대로 조정이 되기 때문에 이거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긴자의 야마하 본점에 가 보니 마침 LS 3/5A와 같이 조합을 해 놓고 있어서 이틀 동안을 들어 보았다. 이제까지 들어 본 것 중에서는 나은 편이었으나, 리모콘을 점원에게 맡기고 뒤돌아서서도 금방 이색(異色)의 소릿결을 알아맞힐 수 있었다. LS 3/5A의 연장선에 있는 저음과이 아니었다.

타노이계통과는 잘 맞는 모양인지 일본에서는 이 서브우퍼를 많이들 쓰는 것 같다. 로저스에서 나온 서브우퍼가 미국에서 유행한 적이 있지만, 이 역시 들어보니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서브우퍼와 씨름을 하는 동안 LS 3/5A의 신상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호구의 변덕은 근 십 년 만에 마침내 이 스피커에마저 화를 미친 것이다. 그렇게 근사한 자디스를 둔 채 갑자기 무슨 일로 신도 300B를 들여 놓게 되었는데 8W 출력이기 때문에 능률 낮기로 유명한 이 스피커가 축농증 환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옛날의 고능률 스피커를 물색하던 중 예산 관계로 W.E.의 755A라는 직경 20cm의 풀 레인지를 구한 다음 뒤가 터져 희안하게 생긴 인클로저를 주문해서 여기다 붙여서 들어 보았더니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LS 3/5A와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어느 날 저녁 오랜만에 으스름한 불빛 아래서 LS 3/5A와 처연한 기분으로 대좌했다. 검은 면사포를 쓴, 그 날 따라 더 작아 보인 이 물건은 음악을 들려 주는 대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 당신 오늘 눈치를 보아하니 꽤 심각한 모양인데 늘 그렇듯이 마음이 바로 얼굴에 나타나고 있네요. 아마도 나한테 고별공연이라도 시킬 모양인데 그보다도 마지막으로 내 그 동안 하고싶었던 얘기나 듣는 것이 낫겠소.

내가 당신을 만난 지는 2년 남짓밖에 안되지만, 내 이복형들('pro' 타입은 맨 나중에 나왔음)인 스펜도어형과 하베스형으로부터 당신이 우리를 끔찍이 좋아해서 내가 세 번째 타자가 된다고 전해 들었소. 그래서 변덕 많고 어리석은 호구들이 대부분인 오디오 매니어로서는 참 점잖고 이성의 선도(鮮度)가 좋은 양반이구나 생각했소. 그 점 때문에 참으로 내 있는 성의를 다해 그 동안 열심히 봉사해 왔고..., 그런데 요새 갑자기 기색이 심상치 않다 싶더니 이게 웬일이오? 마음에 들지 않는 궤짝들을 들고 와서 짝을 지우려는 것을 마다한다고 해서 나까지 덩달아 치워 버리겠다는 말이오? 노기(老妓)의 녹슨 목소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처럼 푹 빠져든단 말이오? 뭐요?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심정이라고요?

하참! 그것은 제갈공명쯤 되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지, 당신같이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당치도 않는 소리요. 앞으로 당신이 또 고생할 걸 생각하니 그간의 정분 때문에 내 마음도 편치 않소. 앞으로 언제 또 볼지 모르겠으나 몸조심하시오. -

그 후 나의 LS 3/5A는 몇 달간 또 다른 매니어인 나의 친지에게 빌려 주었다가 되돌려 받은 때를 빼고는 귀국한 이래로 줄곧 좁은 광 속에서 긴 유폐(幽閉)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기를 1년, 지난 11월 어느 날 목동에 사신다는 젊으나 점잖은 L씨한테 가 버리고 말았다. 조선에 없이 아끼던 파운데이션 오디오의 스탠드도 함께 갔다. 나보다도 잘 아껴 줄 분 같아서 위로는 되지만 10년 지기를 감옥에서 꺼내어 처단하고만 셈이다. 서운한 감은 한동안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2세들에게 대물림하려 했으나 통 취미들이 없고 서브시스템으로 갖기에는 거실이 너무 비좁기 때문에 하는 수 없었지만...

누차 말했듯이 BBC는 메이커가 아니기 때문에 스피커 메이커에게 라이선스를 주어 제조케 하고 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단 한 짝도 BBC에 있는 오리지널과 비교 테스트해 봐서 틀린 점이 없어야 출고검인이 찍힌다. 로저스, 스펜더, 굿맨, 하베스,차트웰 등 회사가 많은데 아주 작은 가격 차이는 있지만, 품질은 100% 동일하다.

자작나무통, KEF유닛, 크로스오버는 물론 심지어 그릴에 이르기까지 그 재질과 성능상 원본과 달라서는 안 된다. 같은 크기의 다른 소형 스피커보다 월등하게 비싼 이유는 그간의 개발비와 이런 수고료가 감안되었기 때문이다.

이 스피커에 대해서 한 가지 이상하게 느끼는 것은, 요즈음의 스피커치고도 능률이 너무 낮아(82dB) 그 부분의 표시를 않는 속셈은 이해가 되나 ,임피던스는 메이커나 출고시점에 따라 각양각색이라는 점이다. 8, 11, 15 등 멋대로이며 판매회사에 문의해도 모른다. 또 진공관 앰프의 명맥이 유지되던 때에 만든 것이므로 15옴의 오리지널이 진공관과 매칭이 잘 되겠지만 왜 이왕이면 16옴으로 딱 맞추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하여간 최근에는 이 임피던스가 불명확하게 되었지만, Tr 시대에 15옴으로 표시해서는 판매상 곤란하므로 판매 회사들이 트릭을 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완고한 BBC가 8옴이나 11옴으로 변경했을 리가 없다고 여겨진다.

로저스의 경우에만 보급형 외에 프로 모델을 생산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캐논 플러그가 달린 점만 다를 뿐 성능면에서는 차이를 못 느낀다. 굵은 스피커 선은 사용할 수 없어 도리어 불편하기만 하다.

하베스는 가장 뒤늦게 제조회사 대열에 합류해서 CD 시대에 맞도록 약간 개정했다고는 하나 프로 모델의 예와 마찬가지로 BBC측으로부터는 어떻다고 하는 일체의 코멘트가 없는 걸 보면 이런 모든 변경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이 스피커야말로 좋은 스탠드를 필수로 요구한다. 오래 전에 영국 파운데이션 오디오사, 클리프 오디오사에서 만든 전용 스탠드가 있었다. 6mm 이상 됨직한 두꺼운 특수강으로 만든 대단히 견고하고 무거운 것이었는데 저음의 보강에 탁효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모양도 파르테논 신전같이 우아하면서도 튼튼한 기둥을 가지고 있어 외견상으로도 LS 3/5A를 한층 돋보이게 해 준다.

이 스피커는 벽으로부터 뒤와 옆을 70cm 정도 띄워 주고 스피커 간격은 1.5m 정도가 되어야 제소리를 낸다. 비좁은 책선반 속에 밀어 넣어야 할 형편이라면 다른 소형이 더 나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므로 이 스피커는 작은 몸체에도 불구하고 서브시스템용으로는 불가이다.

방이 너무 넓으면 성능이 떨어지고 적당한 크기의 방이라면 서브 시스템용으로서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알맞은 크기의 또 하나의 시청 공간이 있을 때에 한해서 서브시스템으로 삼으면 이상적이겠다.

현재의 상황으로 보아 앞으로 LS 3/5A와 재회할 가망은 없을 것 같은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회사 제품이든 15옴 짜리를 가지신 분이 있다면 앞으로 보물처럼 위해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퀴벌레 약을 뿌릴 때는 콘에지가 녹지 않도록 두꺼운 수건으로 잘 감싸 주고...

귀가 여려서 마침내 정절(貞節)한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만 오셀로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 곁에서 따라 죽었다.

- 나의 인생역정은 여기서 끝났도다. 나의 모든 영광도 끝났도다. 너 데스데모나여, 악의 성좌(星座) 아래서 태어난 창백하고 소리없고 성스러운 창조물이여, 너의 그림자 속에 내 누워서 너에게 수없이 입맞추며 -

오셀로의 비탄과 회한이 가슴을 저밀수록 인간의 바보스러움은 더 한층 고조되기만 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과연 누가 이아고인가, 나 자신인가?

짧지 않은 나의 오디오 인생의 절반의 반려였던 나의 데스데모나, 아디오스 LS 3/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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