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토불이: 우리 글 우리 말
어느 지식인이 쓴 글이 마음 한편에 불편하게 남아있다. 오늘날 영어가 전 세계를 아우르는 국제 언어 구실을 하기 때문에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취지였다. 환율문제는 달러를 사용하여 해결하자는 주장도 했다.
그 분의 심오한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 내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참 편하게 내뱉는 주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러한 주장의 틈바구니에서 신토불이를 찾다가는 보탬이 안 되는 민족주의적 감상으로 일을 그르치는 사람이라 몰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 생각해보면, 세상의 말들이 영어 중심으로 헤쳐모여하고 있다. 그다지 새로운 사실도, 충격적인 사실도 아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를 중시하다보면 다른 것은 소홀해지고, 그러다보면 그로 인하여 우리가 잃는 것도 있다.
새로운 생각과 개념을 담아내려고 영어는 수많은 다른 언어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힘을 얻지 못하는 언어들이 결국 사라지면, 영어에 보탬� �되었던 그 자원도 사라진다.
영어의 확산과 다른 언어들의 소실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후손은 다른 언어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언어를 새롭고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그 창조성과 유연성을, 그리고 또 우리글 우리말을 통해서만이 같이 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편안해질 수 있는 것을 잃어버릴 것이다.
2. 풀어짐이 있는 맺힘: 한(恨) 이야기 우리글 우리말을 통해서만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 원(怨)과 한(恨)을 꼽아본다. '원한이 맺힌다'라는 말에 익숙하다. 원과 한은 비슷하다 여기지만, 품고 있는 의미는 좀 다르지 싶다. 원수는 '갚는다' 하고, 한은 '푼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원'은 갚는 것이요, '한'은 푸는 것이다.
그렇고 보면 우리는 또한 푸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 한만 푸는 것이 아니다. 심심한 것까지 풀어 심심풀이라 하고, 남들이 싸워도 풀어버리라고 하고, 죽은 사람조차 한을 남기지 말고 풀라하여 푸닥거리를 한다.
춘향이와 심청이도 ! 맺힌 한을 풀었다. 춘향이가 변 사또에 갖는 감정은 원이고, 이 도! 령에 대� �감정은 한이다. <춘향전>이 원을 품은 이야기라면 사또에 복수하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한을 담은 이야기이기에 끝내 도령과 다시 만나 맺힌 그 한을 푼다.
심청이도 마찬가지다. 가난에 맺히고, 힘이 없어 맺히고, 이래저래 맺힌 것투성이가 심청이의 삶이 아니던가. 심청이도 사무친 그 맺힘을 풀어버린다. 죽어서도 살아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만남 기쁨에 봉사 아버지는 눈을 뜬다. '풀어짐이 있는 맺힘' 이야기들이다.
이렇듯 원은 갚으면 그만이지만 한은 풀면 새로움이다. 원수를 갚는 이야기는 통쾌하지만 핏방울이 튄다. 한을 푸는 이야기는 눈물이 나도 핏방울이 없다. 결국 신이 난다.
3. 한의 이야기 서편제: 김수철의 <선창가>
소리꾼 이야기를 담은 영화 <서편제>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이청준 소설을 김명곤이 각색하고 임권택이 감독하여, 당시 한국 영화사상 최고 관객 동원의 기록을 세웠다는 것 때문은 아니다.
바로 한 맺힌 이야기를 � 昇�있기 때문이다. 어느 초겨울 유랑생활을 하며 떠도는 유봉은 의붓딸 송화와 아들 봉호와 함께 구슬픈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며 보리가 막 심어진 밭둑의 돌담길을 지나간다. 그들의 고단하고 지친 걸음은 아버지가 진도아리랑을 선창하고, 딸이 이에 화답하면서 걸음이 가벼워진다. 점점 흥이 올라 아들도 북채를 잡고 언덕 아래에 이른 세 사람의 어깨춤은 신명이 난다. 가슴을 칼로 저미는 한이 사무쳐야 제대로 된 소리를 지를 수 있다며 딸아이의 눈을 멀게 하는 아버지 유봉이, 죽을 녘 다되셔야 송화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맺힌 한이 선하다고 한다. 그래 천성이 선하면 맺힌 한도 선한 소리로 푸는 갚다.
<서편제>의 마지막 장면 즈음. 어느 시골 주막에 한 남자가 들어선다. 그는 주막 여인의 판소리 한 대목을 들으며 회상에 잠긴다. 그는 눈먼 여인네에게 소리를 청하고, 여인네는 그의 청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그는 북을 친다.
그 둘의 소리와 장단은 밤새� 돈�어울리며 맺힌 한을 푼다. 그녀는 죽은 아비와 똑같은 북장단 ! 솜씨에 � 陋�오래 전 떠난 오라버니임을 알지만, 다음날 그들은 다시 헤어져 길을 떠난다.
이 때 부른 소리가 김수철 편곡의 <선창가>이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이다.
<서편제> 영화 음반에 마지막 곡으로 담긴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은 여타 심청가의 대목 중 최고라 하겠다. 무엇보다도 심청이 다운 오정해라는 소리꾼이 나오고, 그리고 신디사이저 음향으로 넘실거리는 바다 속으로 빠지는 청이의 비장함을 잘도 표현한 김수철의 일품 편곡 솜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청이 거동 봐라. 바람 맞은 사람같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뱃전으로 나가더니,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내가 이리 진퇴함은 부친 효성이 부족함이라. 치마 폭 무릅쓰고, 두 눈을 딱 감고, 뱃전으로 우루루루루루루, 손 한 번 해치더니, 강상의 몸을 던져, 배 이마에 거꾸러져, 물에가 풍... 행~화~!"
이렇듯 한 떨기 꽃이 되어 청이는 사라진다.
본 게시물은 원저자인 장규원 교수님의 허락 하에 옮겨온 글입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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